어릴 때부터 말 타며 호흡
2005년부터 경마 입문 후
소유한 말 가족처럼 대해
은퇴 경주마도 지속적 관리

김진영 마주와 배우자가 은퇴 경주마 메이저킹을 보살피며 사진을 찍고 있다. /김진영 마주
은퇴한 경주마는 사람들 관심 밖에 산다. 승마장에 보내져 체험용 말로 여생을 보내기도 하고 쓸모를 다했다는 이유로 도축되는 일도 적지 않다. 경주마를 소유한 마주 역시 더 이상 상금을 벌어올 수 없는 은퇴 경주마에 별다른 관심을 쏟지 않는다. 한국마사회에서도 경주마 은퇴 후 용도변경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승용마 전환을 유도하거나 지원금을 제공하고 있지만, 마주 사유재산에 속하는 말을 제대로 관리하기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이처럼 성적으로만 가치가 매겨지는 경마 세계에서도 경주마를 자식 같이 생각하는 마주가 있다. 김진영(75) 마주는 은퇴 경주마를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그는 “부모가 자식을 돌볼 때 쓸모를 따져가면서 보살피는 거는 아니지 않느냐”며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주기적으로 가서 쓰다 듬어 주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온다”고 말했다.

은퇴 경주마를 보살피는 김진영 마주. /한국마사회
경주마는 일반적으로 2살에 데뷔해 3살 무렵 전성기를 맞는다. 운이 좋다면 전성기에서 3~4년 더 현역으로 뛰지만 보통 2년 이내 경주마 생활을 마무리한다. 은퇴한 경주마 가운데 일부는 종마(번식 목적으로 관리되는 말)가 되고 대다수는 승마장 등으로 향한다. 말 평균 수명이 30살 전후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 창 달려야 할 나이에 무대 뒤로 밀려나는 셈이다.
또 다른 문제는 경주마로써 쓰임이 다한 은퇴 경주마들이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김진영 마주에게 이 같은 현실은 더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는 고향인 김해군 대저면(현 부산시 강서구 대저동)에서 어릴 때부터 말을 타고 다녔다. 그에게 말은 단순히 이동 수단을 넘어서 가족 같은 존재였다.
성인이 된 이후 축산업 관련 사업을 하면서도 꾸준히 말을 탔다. 승마장을 직접 운영해 말을 관리하는 일도 했다. 자연스레 경마에도 눈길이 갔고 2005년 부산경남경마공원 개장과 동시에 마주가 됐다. 그해 부산경남 마주협회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김진영(왼쪽) 마주가 2018년 자신의 경주마 ‘돌아온포경선’을 직접 예시하고 있다. /한국마사회
“어릴 때 부모님이 논밭을 크게 하셨는데 그때부터 집에 있는 말을 타고 다녔어요. 저한테는 가족이었던 거지요. 말이 뭐를 싫어하고 아플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터득했습니다. 마주가 된 거는 2005년인데 경매를 통해서 말을 샀다기보다는 저는 가족이 됐다는 생각으로 보살폈습니다. ”
말에 대한 그의 애정은 마주가 된 이후로도 여전했다. 경주마는 경기 출전 전 예시장에서 몸을 푸는데 이때 관람객이 경주마를 직접 볼 수 있게 한다. 김진영 마주는 예시장에도 직접 나타나 자신의 말을 선보였다. 마주라고 해도 예시장에 직접 얼굴을 드러내 자신의 말을 소개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는 심지어 양복을 갖춰 입고 선글라스까지 낀 채 자신의 말을 소개했다.
“마주라고 해도 말을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성적만 내서 상금만 가져오라는 식인거지요. 저는 어릴 때부터 말을 탔으니까 말을 끌고 가는 게 특별히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시장에서 보내는 시간은 경기 전에 말에게 잘 뛰고 오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메이저킹이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장관배 대상경주에 나서 달리고 있다. /한국마사회

메이저킹이 2013년 경마 대회에서 결승점을 통과하고 있다. /한국마사회
그는 그가 소유한 여러 말 가운데서도 ‘메이저킹’에 유독 더 관심을 쏟았다. 희로애락을 함께한 존재여서다. 메이저킹이라는 이름도 직접 지어줬다. 부모가 자식의 이름을 고심해서 짓듯 그 역시 영어 사전을 뒤져가며 좋은 의미 단어를 고르고 골랐다.
그의 바람이 통했을까. 메이저킹은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장관배 대상경주에서 우승을 거두며 경주마로서 이름을 떨쳤다. 국내 최정상급 경주마로 인정받으며 세계 무대에도 진출했다. 다만 세계 무대에서는 좌절의 쓴맛을 봤다. 국내로 돌아온 뒤로는 종마가 됐다. 경주마 전성기 자체가 짧지만 메이저킹은 평균보다 더 짧은 1년 남짓한 전성기를 보내며 아쉬움을 남겼다.
“보통 경주마 전성기가 3살인데 메이저킹은 2살 때부터 참 잘 뛰었습니다. 보통 초반에 치고 나가면 후반에 지치기 마련인데도 메이저킹은 끝까지 속도를 유지했어요.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김진영(왼쪽) 마주가 2013년 12월 메이저킹 은퇴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김진영 마주
그는 2013년 우승 당시 사진을 지금까지도 휴대전화에 간직하고 다닌다. 메이저킹이 은퇴한 이후에는 직접 여러 목장을 다니며 지낼 곳을 찾았다. 현재 메이저킹은 양산시 동면 호포승마스쿨에서 지내고 있다.
“메이저킹은 저를 위해 최선을 다해 뛰어줬습니다. 이제는 제가 보답할 차례인 거지요. 말은 계속해서 움직여야 하는 동물입니다. 그래서 최대한 넓은 방목 환경을 갖춘 곳을 보금자리로 정했습니다.”
메이저킹 역시 이 같은 그의 마음을 안다. 김진영 마주 발소리만 듣고도 반응을 보이고 그가 가까이 왔을 때는 얼굴을 비비며 반가움을 드러낸다.
“마주들이 보통 여러 말을 소유하고 있는데요. 그중에서 실제로 성적을 내는 말들은 몇 마리 되지 않습니다. 결국 성적을 못 내는 말들은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아니라 말들도 사람이랑 똑같습니다. 각자 쓸모가 다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족이 되기로 했으면 뒤처지는 자식이 있어도 보살펴주고 끝까지 함께 해야 합니다.” /박신 기자
- 경남도민일보에 게재 된 부산경남경마공원 김진영 초대 회장님의 인터뷰 기사입니다-
냉혹한 경마 세계서 사랑으로 말 품은 김진영 마주
어릴 때부터 말 타며 호흡
2005년부터 경마 입문 후
소유한 말 가족처럼 대해
은퇴 경주마도 지속적 관리
은퇴한 경주마는 사람들 관심 밖에 산다. 승마장에 보내져 체험용 말로 여생을 보내기도 하고 쓸모를 다했다는 이유로 도축되는 일도 적지 않다. 경주마를 소유한 마주 역시 더 이상 상금을 벌어올 수 없는 은퇴 경주마에 별다른 관심을 쏟지 않는다. 한국마사회에서도 경주마 은퇴 후 용도변경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승용마 전환을 유도하거나 지원금을 제공하고 있지만, 마주 사유재산에 속하는 말을 제대로 관리하기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이처럼 성적으로만 가치가 매겨지는 경마 세계에서도 경주마를 자식 같이 생각하는 마주가 있다. 김진영(75) 마주는 은퇴 경주마를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그는 “부모가 자식을 돌볼 때 쓸모를 따져가면서 보살피는 거는 아니지 않느냐”며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주기적으로 가서 쓰다 듬어 주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온다”고 말했다.
“나에겐 가족 같아요”
경주마는 일반적으로 2살에 데뷔해 3살 무렵 전성기를 맞는다. 운이 좋다면 전성기에서 3~4년 더 현역으로 뛰지만 보통 2년 이내 경주마 생활을 마무리한다. 은퇴한 경주마 가운데 일부는 종마(번식 목적으로 관리되는 말)가 되고 대다수는 승마장 등으로 향한다. 말 평균 수명이 30살 전후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 창 달려야 할 나이에 무대 뒤로 밀려나는 셈이다.
또 다른 문제는 경주마로써 쓰임이 다한 은퇴 경주마들이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김진영 마주에게 이 같은 현실은 더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는 고향인 김해군 대저면(현 부산시 강서구 대저동)에서 어릴 때부터 말을 타고 다녔다. 그에게 말은 단순히 이동 수단을 넘어서 가족 같은 존재였다.
성인이 된 이후 축산업 관련 사업을 하면서도 꾸준히 말을 탔다. 승마장을 직접 운영해 말을 관리하는 일도 했다. 자연스레 경마에도 눈길이 갔고 2005년 부산경남경마공원 개장과 동시에 마주가 됐다. 그해 부산경남 마주협회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논밭을 크게 하셨는데 그때부터 집에 있는 말을 타고 다녔어요. 저한테는 가족이었던 거지요. 말이 뭐를 싫어하고 아플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터득했습니다. 마주가 된 거는 2005년인데 경매를 통해서 말을 샀다기보다는 저는 가족이 됐다는 생각으로 보살폈습니다. ”
말에 대한 그의 애정은 마주가 된 이후로도 여전했다. 경주마는 경기 출전 전 예시장에서 몸을 푸는데 이때 관람객이 경주마를 직접 볼 수 있게 한다. 김진영 마주는 예시장에도 직접 나타나 자신의 말을 선보였다. 마주라고 해도 예시장에 직접 얼굴을 드러내 자신의 말을 소개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는 심지어 양복을 갖춰 입고 선글라스까지 낀 채 자신의 말을 소개했다.
“마주라고 해도 말을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성적만 내서 상금만 가져오라는 식인거지요. 저는 어릴 때부터 말을 탔으니까 말을 끌고 가는 게 특별히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시장에서 보내는 시간은 경기 전에 말에게 잘 뛰고 오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은퇴해도 자식처럼 돌봐
그는 그가 소유한 여러 말 가운데서도 ‘메이저킹’에 유독 더 관심을 쏟았다. 희로애락을 함께한 존재여서다. 메이저킹이라는 이름도 직접 지어줬다. 부모가 자식의 이름을 고심해서 짓듯 그 역시 영어 사전을 뒤져가며 좋은 의미 단어를 고르고 골랐다.
그의 바람이 통했을까. 메이저킹은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장관배 대상경주에서 우승을 거두며 경주마로서 이름을 떨쳤다. 국내 최정상급 경주마로 인정받으며 세계 무대에도 진출했다. 다만 세계 무대에서는 좌절의 쓴맛을 봤다. 국내로 돌아온 뒤로는 종마가 됐다. 경주마 전성기 자체가 짧지만 메이저킹은 평균보다 더 짧은 1년 남짓한 전성기를 보내며 아쉬움을 남겼다.
“보통 경주마 전성기가 3살인데 메이저킹은 2살 때부터 참 잘 뛰었습니다. 보통 초반에 치고 나가면 후반에 지치기 마련인데도 메이저킹은 끝까지 속도를 유지했어요.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그는 2013년 우승 당시 사진을 지금까지도 휴대전화에 간직하고 다닌다. 메이저킹이 은퇴한 이후에는 직접 여러 목장을 다니며 지낼 곳을 찾았다. 현재 메이저킹은 양산시 동면 호포승마스쿨에서 지내고 있다.
“메이저킹은 저를 위해 최선을 다해 뛰어줬습니다. 이제는 제가 보답할 차례인 거지요. 말은 계속해서 움직여야 하는 동물입니다. 그래서 최대한 넓은 방목 환경을 갖춘 곳을 보금자리로 정했습니다.”
메이저킹 역시 이 같은 그의 마음을 안다. 김진영 마주 발소리만 듣고도 반응을 보이고 그가 가까이 왔을 때는 얼굴을 비비며 반가움을 드러낸다.
“마주들이 보통 여러 말을 소유하고 있는데요. 그중에서 실제로 성적을 내는 말들은 몇 마리 되지 않습니다. 결국 성적을 못 내는 말들은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아니라 말들도 사람이랑 똑같습니다. 각자 쓸모가 다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족이 되기로 했으면 뒤처지는 자식이 있어도 보살펴주고 끝까지 함께 해야 합니다.” /박신 기자
- 경남도민일보에 게재 된 부산경남경마공원 김진영 초대 회장님의 인터뷰 기사입니다-